大겸재전"…겸재 정선의 모든 것 전시
간송미술관서 16일부터 100여점 전시
[조선일보 정재연 기자]
이것이 겸재 그림? 18세기 조선 문화 부흥기를 상징하는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을 속속들이, 통째로 본다. 그동안 알고 있던 ‘진경산수(眞景山水)’만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전시 제목은 ‘대겸재’(大謙齋)’. 겸재의 모든 것을 통틀어 보여주는 대형 전시란 뜻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 강점기 당시 사재를 털어 모은 귀중한 문화재가 소장된 간송 미술관은 매년 봄, 가을 정기전 때만 일반에 문을 연다. 지난 1971년 간송미술관 첫 전시 역시 겸재였다. 이후 여러 전시에 겸재 작품이 몇 점씩 포함되긴 했지만 100여점이 넘는 간송의 ‘겸재 컬렉션’이 총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 겸재’ 전을 준비한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실장은 “관객의 눈도 많이 높아졌다”며 “30여년 전만 해도 일반 대중이 지금처럼 겸재의 위대함을 인식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림 감상 포인트는 중국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어버린 자신감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가장 우리 것답게, 또 독창적으로 표현한 진경산수뿐 아니라 조선 선비들의 멋과 여유를 보여주는 풍속도, 세밀하게 그려진 화조화에 주목하라. 조선 성리학의 맥을 잇는 선비였던 겸재는 중국 남방화와 북방화를 한 화면에 동시에 구사하면서 음양의 조화를 모색, 한국의 토산(음)과 암산(양)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붓을 휙휙 내지르고 먹을 점찍은 겸재의 그림에는 살랑대는 파도와 삐죽삐죽한 바위가 살아 있다. 직접 팔도강산을 누비며 관동팔경, 단양팔경, 금강산 연작 등을 남긴 겸재는 나아가 중국 그림까지 진경산수 기법으로 재해석해낸다. 이태백이 ‘천하 제일’이라 칭송한 여산을 우리 산으로 바꿔 그리는가 하면, 중국 고사도인 ‘어초문답’(낚시꾼과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다)에는 중국 그림에는 없는 우리 지게를 그려 넣었다. ‘온 폭에 거의 하늘의 공간을 남기지 않은…스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호연한 시심이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로 유명한 ‘청풍계’나,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호방한 ‘박연폭포’ 등은 잘 알려진 그림. 북악산(상봉 언저리 비둘기 바위가 삐죽 보일 정도로 자세히 그렸다)뿐 아니라 송림 가득한 경복궁 폐허, 별장 즐비했던 아차산 기슭, 또 송파·미사리·압구정동 등 ‘서울실경’도 펼쳐진다. 목멱산(남산) 위로 동그랗게 모습을 드러낸 태양, 길마재 꼭대기에서 붉게 타오르는 봉화…. 사진 찍듯, 보이는 대로만 그린 것이 아니다. 겸재는 시점을 공중으로 붕 띄우거나 여러 시점을 종합해 펼쳐내는 등 탁월한 구도를 자랑한다. 화면 중앙을 그냥 텅 비워버리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겸재의 나이 80여세에 눈에는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촛불 아래서 세화를 그려서 털끝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고 적었다. 그 치밀함의 결정체는 쥐새끼 두 마리가 빨간 수박 속을 파먹는 장면, 꽁무니가 빨개진 가을날의 방아깨비,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질 듯 자세히 묘사한 강아지풀, 하늘하늘 투명한 매미 날개 등이다.
“영원한 고전과 영원한 현대는 서로 통한다”고 말한 최 실장은 “문화 절정기가 만들어낸 겸재의 작품을 보면 우리 문화예술이 나아갈 앞길이 훤히 보인다”고 말했다. 시원한 베옷에 맨 상투 차림으로 담소를 나누는 선비들의 여유부터 서울 장안의 안개 낀 달밤까지, ‘대겸재’ 전시에는 진경의 참맛과 섬세함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전시는 16~30일.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