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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가輓歌

소깐 2006. 3. 13. 18:43
■ 만가 輓歌[수레 끌 만/노래 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상여[내용] :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역食其)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해露歌)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해上朝露何易晞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 마르도다.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해로가]

蒿里誰家地 聚斂魂魄無賢愚 호리는 뉘집 터인고, 혼백 거둘 땐 현우가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王?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호리가]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

[참고]만가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로서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이다. 따라서 구비 전승으로서의 민중 문학인 동시에 민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가는 전통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며 어느 면에서는 기록문학에 비할 수 없는 절실한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만가는 쉽게 '상여소리', '상부소리', '영결 소리'라고 하며 또 향도가, 향두가, 상두가(喪土歌), 상두가(常頭歌), 해로가라고도 한다. 향도가란 신라와 고려 시대의 향도라는 일종의 신앙 단체에서 연유된 것으로, 불교와 무속의 두 요소가 내포된 단체가 부르는 노래였다. 김유신 장군의 화랑도를 일명 용화향도라고 한 것을 보면 신라의 화랑이 불교와 고유 신앙의 요소를 내포한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숫종 때는 승려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만불회라는 신앙 단체가 있어서 그 모임에 든 사람을 만불향도라 했다. 그래서 향도란 요즘 단원이나 회원과 같은 말로, 죽은 사람들이 합창하는 상여노래를 향도가라 했다. 향도들이 상여를 운상하게 된 것은 맹인을 영천 영지에 극락시킨다는 신앙적 요소가 내포돼 있었다. 향도가 향두로 변음되어 향두가가 된 것이다.
 상여의 낮은말로 상두(喪土)란 말이 있다. 여기서 '土'는 뿌리를 의미하는 뜻에서 '두'로 발음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제 낯을 내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으로 "상두술 낯내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처럼, 상여 소리를 '상두가'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상두가란 어휘가 생겼을 것이다.
 해로가란 솔잎에 묻은 이슬에서 나온 말로 인생 무상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여기서 '솔'은 소나무의 솔이 아니라 달래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용 식물부추를 의미하는 호남 지방의 방언이다. 간밤에 내린 이슬이 부춧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떨어진다는 데서 허무한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한나라 때 생긴 말로 주로 귀족 사회에서 쓰였다. 그리고 만가를 호남 지방에서는 상부가, 제주도에서는 답산가라 일컫는다. 상부가란 옛날 향약의 상부 상조에서 나온 말이요, 갑산가란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간다는 데서 그렇게 쓰인 것이다.
 영어로 엘레지다. 즉 죽은 이를 위해서 애도와 비탄을 나타내는 노래나 시다. 이 'Elegy'는 그리스의 'elegos' 즉 갈대피리란 뜻으로서 당초에는 피리를 반주하는 만가의 일종을 지칭했으나 후에 심사나 명상 등을 싣는 데 적합한 시 형식을 지칭하게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와 비탄의 감정을 나타내는 서정시를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가라 하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사를 노래화한 것을 이른다. 만가에는 상여를 메고 묘지를 향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매장한 뒤에 흙을 다질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후자는 '달구지'라고 따로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봉분까지 환전히 다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산하지'라는 허전한 노래가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해남군과 고흥군 일부지역에서만 간긴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까지를 총칭하여 만가라 한다.
< 한국만가집>

 

運喪 때 선소리

“어허야, 저승길이 멀다더니 닥쳐보니 대문 밖이 그곳일세.

부귀영화 다 버리고 홀로 떠나는 내 심정 에구에구, 원통절통해라.

가기 싫은 저승길에 발길이 땅에 붙었구나.

맏상주는 어디 갔노?

에미 저승길에 배고플까 걱정된다.

노잣돈 가져와라. 이래저래 요령부리다 저승사자 노하실라.

어여 갈길 재촉하세

먼저 가서 자리 잡은 우리 영감 보이는데,

반갑기도 하련만은 뒤처리를 덜 하였나,

발길이 무겁구나.

알고 보니 막내 놈이 치맛자락 휘여잡고

막무가내 놓질 않네.

에고, 이 못난 놈아.

그렇게도 에미가 애달프면 생전에 효도하지.

뿌린 눈물 온 산을 적신들 저승가는 발길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 후회 없이 살그라.

워어이, 워어….” 

이야기가 좀 그렇지요?

그래도끝의 준비는 늘 해야 합니다. 

오래 삽시다! -동산마술사-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동산마술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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