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소개

신윤복 미인도 나혜석 이혼고백서 바람의화원

소깐 2008. 11. 14. 16:49

[e탐구생활]첫사랑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간 그녀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1.14 15:36 | 최종수정 2008.11.14 15:41



"신윤복이 진짜 여자였나요?"
"신윤복은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드라마 < 바람의 화원 > 에 이어 영화 < 미인도 > 가 남자로만 알았던 신윤복을 성전환시키자 '남장 여자' 신윤복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이 뜨겁다.

신윤복은 정말 여자일까. 이런 의문에 미술계는 손사래친다. 미술사학자 윤범모 교수(경원대)는 "누가 뭐래도 신윤복은 남자다. 여자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상 속 '여자 신윤복'은 대중의 입맛에 맞게 짜여진 '팩션'이라는 설명이다. 원작소설 < 바람의 화원 > 작가도 "실존했던 일부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은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 재구성된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신윤복의 모습이 그려진 영정이 없는데다,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화사하고 감미로운 화풍이 상상력에 발동을 건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는 누구일까. 윤 교수는 "신사임당도 화가이지만 검증자료가 없기 때문에 누가 최초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록으로 전해지고 사회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나혜석(1896~1948)이 최초 여성 유화가로서 현대인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태어난 나혜석은 예술가로서 이름을 날렸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으로 각인된다. 최초 여성 유화가를 시작으로 최초 여성 소설가,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최초의 유화가, 최초 부부동반 세계일주…. 그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특히 나혜석은 폐쇄적인 가부장적 유교 이념이 여성만의 순종적인 삶을 강요하던 시대에서 "정조는 취미다"라고 외친 인물로 유명하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한다(이혼고백서)." 이처럼 나혜석은 '자유'를 찾아 평생을 봉건주의와 남존여비사상과 싸웠다.

결혼조건으로 평생 동안의 사랑, 작품 제작 방해 금지,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의 별거 등을 요구했다. 이어 남편을 데리고 첫사랑인 소월 최승구의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파리에서 최린과 로맨스를 즐기다가 귀국 후 남편에게 무참히 채이며 이혼당한다. 이후 무일푼에다 자녀들까지 모두 빼앗겨 떠돌이 신세가 된다. 남녀평등을 피력한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고 최린을 정조 유린으로 고소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엔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여성, 그가 나혜석이다.

< 바람의 화원 > 이나 < 미인도 > 의 교집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천재화가의 '사랑'이다. 나혜석 역시 파란만장한 삶 한 가운데에 '사랑'이 놓여있다. '그놈의' 사랑 때문에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한 죄로 사회는 그의 몸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여자도 사람이다"고 주장한 그는 자식들에게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고 외쳤다.

< 나혜석 평전 > 을 쓴 정규웅씨는 "나혜석의 파멸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지만 그것은 오직 나혜석 한 사람의 탓 만은 아니었다. 나혜석을 파멸 속으로 몰아넣고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우리 사회의 제도와 인습 그리고 사람, 곧 우리들 자신이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고액권 화폐의 도안 인물로 신사임당 외에 나혜석도 거론됐다. 하지만 삶이 불행하고 비극적이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탈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나혜석의 정신은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는 재능있는 여성의 불운한 말로를 뜻하는 '나혜석 콤플렉스'를 퍼뜨렸다. 윤범모 교수는 "나혜석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도 자유가 그립다"고 했다. 올해는 나혜석이 생을 마감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 고영득기자 ydko@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