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말

[스크랩] 나 죽고 그대 살아서/悼亡(配所輓妻喪)

소깐 2006. 3. 13. 18:41
나 죽고 그대 살아서
― 悼亡(配所輓妻喪) ―
 
鄭震權


오늘 金正喜1)의 詩 한 편을 읽었다. 나는 슬픈 詩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왜 이 詩가 눈에 띄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제목은 「悼亡(도망,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이 詩는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 流配地에서 아내의 죽음을 哀悼함)」이라는 이름으로도 퍽 유명하다. 여기서 配所는 곧 濟州島, 金正喜는 그때 濟州島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圍籬安置). 詩는 다음과 같다.

그대여, 冥王(명왕)2)께 上疏(상소)를 해서
來世엔 우리 서로
바꾸어 나세.

千里 밖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

那將月?訟冥司3)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阮堂先生全集』


남편이 풀려 돌아오기를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던 故鄕의 아내가 그만 눈을 감는다. 끝없는 슬픔과 恨을 안고 떠나는 아내, 千里 먼 땅에 외로이 귀양 사는 남편의 가슴이 터진다. 다음은 그 絶叫(절규)다.

아, 桁楊(항양)4)이 앞에 있고 嶺海(영해)5)가 뒤를 따라도 내 일찍이 마음에 흔들림이 없더니, 이제 한 女人의 죽음에 이토록 놀라고 가슴이 찢어져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는 무슨 까닭이뇨?
슬퍼라, 사람은 다 죽는다고 하지만, 당신은 홀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죽었기에 당신의 슬픔은 더할 수 없고 恨은 끝없을 것입니다. 그 슬픔과 恨을 뿜어내면 폭포가 되어 쏟아지고, 그 恨과 슬픔이 맺히면 우박이 되어 퍼부으리니 족히 孔夫子의 마음도 感動시킬 것입니다. -「夫人禮安李氏哀逝文」

그렇다. 적어도 남편이 외로운 섬에서 귀양살이하는 동안만은 그 아내는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의 죽음이 얼마나 슬펐으면 바꾸어 태어나자고 했을까? 옛날의 高敬命6)도 일찍이 다음과 같은 時調를 남겼다.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서 너로 하여금 나를 그리워하게 하면 너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네가 알리라는 것이다. 悽絶(처절)한 데가 있다.

보거든 슬믜거나7) 못 보거든 잊히거나,
네 나지 말거나 내 너를 모르거나.
차라리 내 먼저 스러져 네 그리게 하리라. -『東國歌辭』

그러나 바꾸어 태어나서 내 슬픔을 아내가 안다 한들 그 또한 슬픔이 아니랴. 나 먼저 죽어서 너를 못 잊고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네가 안다 한들 그 역시 슬픔일 것이다. 어느 中國 詩人은 얻어도 잃어도 다 괴로운 것이 사랑(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이라고 했다 한다. 사랑은 본래 그런 것인가? 슬프고 괴롭고 그런….


1) 金正喜(1786~1856) : 朝鮮 憲宗 때의 文臣, 書藝家, 文人, 學者. 號는 秋史, 阮堂 등. 여러 筆法을 연구하여 자신의 독특한 書體(秋史體)를 완성했다고 한다. 저서로 『阮堂集』 등.
2) 冥王 : 본래 閻羅大王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生死를 주관하는 絶對者의 뜻으로 쓴 듯.
3) 那將月?訟冥司 : 어찌하면 우리를 夫婦로 맺어 준 月?(媒神)로 하여금 冥司(冥王)에게 訟事를 하게 해서. 번역시에서는 우리가 직접 冥王께 上疏를 하자고 한 것으로 했다.
4) 桁楊, 5) 嶺海 ; 桁楊은 刑具이니 이것이 앞에 있다는 것은 罪人의 신세가 되었다는 뜻, 嶺海는 산과 바다이니 이것이 뒤를 따른다는 것은 濟州島로 귀양을 간다는 뜻.
6) 高敬命(1533~1592) ; 壬辰倭亂 때의 義兵將. 號는 霽峰(제봉). 詩文이 뛰어났다. 저서로 『霽峰集』. 이 時調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7) 보거든 슬믜거나 : 이 時調는 대강 “내가 너를 만나면 네가 싫어지거나 너를 못 만나면 네가 잊혀지거나, 네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거나, 태어났더라도 내가 너를 몰랐거나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