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보까

스패인 마드리드 부터 세비아관광지 까지

소깐 2008. 9. 15. 21:28

. 마드리드


■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전화 : 34-91-420-2836
   *개관시간 : 화요일-토요일까지-9AM-7PM 

   토요일 오후 2시부터-오후7시까지.일요일은 무료입장, 월요일 CLOSE.마드리드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려지는
   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1785년 까를로스 3세때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1819년11월 19일 왕립 부속 미술관으로써 개관한다. 1970년도까지 왕실부속으로 귀족 관리들에
   의해 관리되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국립 미술관으로써 문화교육부 담당으로 넘어갔다.

   colection의 양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특히 회화만 3000점 이상으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미술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회화외의 500여점에 이르는 조각들, 4000점에 이르는 고야의 판화,
   스케치 등은 빼놓을 수 없는 프라도 미술관의 중요한colection이다.
   작품의 반수 이상이 스페인 화가의 작품이며, 플랑드로 회화(14-16세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꽃피운
   예술) 661점, 이탈리아 회화 453점, 프랑스 회화 157점, 독일 회화 43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Reina Sofia) 

                             

             

   *전화 : 34-91-467-5062
   *개관시간 : 월요일,수요일-토요일까지-10AM-9PM, 일요일 : 10AM-2:30PM

   원래1965년도까지 병원으로 사용했던 이 건물은 1978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89년 12000평의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개축, 현재 스페인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붙여 ‘MUSEO DE REINA DE SOFIA’라고 명명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현대 화가등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를 비롯,
   달리, 미로, 후안 그리스 등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 화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있다.
   3000점 이상의 회화, 400점이상의 조각, 9000점 이상의 조형작품과 그래픽이 있다.



■ 티센 미술관 (Thyssen-bornemisza)

   티센 가문에 의해 수집되어진 개인 소장 미술관이었으나 1973년부터 국립미술관으로 승격되었다.
   19세기 초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써 외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내부
   개축수리를 해서지금의 미술관으로 건축되었다. 정면의 프라도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현대미술관과 함께
   마드리드 3대 미술관으로 꼽는다. 총 49실의 상설전시장과 함께 특별전시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약 800여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중세 미술에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19세기 인상주의를 거쳐 현대의 큐비즘,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역사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콜렉션 중에는 국외화가로 DUCCIO, VAN EYOK, MENLING, 루벤스, 카라바이오, 틴토레토, 티지아노,
   람브란트, 블레이크, 마네, 모네, 피사로, 르노와르, 반고호, 칸딘스키, 마티스, 몬드리안, 샤갈등의 작품이
   있고, 국내 스페인화가로는 엘그레고, 리베라, 스루바란, 벨라스케스, 달리, 미로, 피카소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왕궁 (Palacio Real de Madrid)

             
           
 
              
 


  *전화 : 34-91-542-0059

   부르봉 왕가문화의 대표적 유산, 1700년 카를로스 2세가 왕위 계승자 없이 사망하자 합스부르그가와
   부르봉 왕가의 왕위 계승권 싸움의 결과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펠립페 5세가 부르봉가의
   첫 왕으로 등극한 후, 현대의 왕인 후안 까를로스 1 세까지 계속되고 있다.
   원래 지금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합스부르그 왕가(스페인에서는 아우스트리아 왕가)의 왕궁이 있었으나,
   1734년 크리스마스때 화재가 발생, 거의 전소되고 4년 후인 1738년부터 26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1764년 
   완성되었다. 프랑스 풍의 르네상스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을 혼합한 건축물로 방은 2800개에 달하며
   카를로스 3세, 카를로스 4세, 이사벨 2세 여왕, 알폰소 12세 등 20세기 초반까지 왕실 가족들에 의해 사용
   되었다.
   지금은 국가 공식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공식행사가 없는 날에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진다.
   주위에는 사바티니 정원, 야외 공식행사로 쓰이는 왕실 소속 모로 공원등이 왕궁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 에스파냐 광장 (Plaza de Espana)

                            

            

  
   1916년에 세르반테스의 사망 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지은 광장으로,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광장중의 하나이다.
   중앙윗부분에 작가 세르반테스상이 있고 그 밑에 말과 나귀를 탄 동키호테와 산초 판사동상이 있다.


■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가까이에 있는 솔 광장과 함께 구시가지에 중심을 이루는 광장이다.
   1617년 펠리페 3세에 의해 건축시작, 1621년에 완성되었다. 1672년 화재로 부분적인 파손을 가져왔다.
   현재의 광장은 18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광장가운데에는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서 있다.
   모든 시민 집회활동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고 종교재판도 열렸었으며, 1846년까지는 투우경기도 이곳에서
   열렸었다. 현재에도 모든 축제, 공공행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매주 일요일에는 우표, 고화시장, 연말의
   크리스마스 나무 및 장난감시장 등이 열린다.



■ 광장 (Puerta del Sol)

            

               


   마드리드의 심장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베리아반도의 0KM로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의 이름은 '뿌에르따데솔(태양의 문)광장'이라고하나, 간단히 줄여 'SOL(태양)광장'이라고 부른다.
   솔 광장의 역사는 마드리드의 역사라고 할만큼 숱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최초로 가스등이 커졌던 곳,
   최초로 전차가 다녔던 곳, 최초로 전기불이 켜졌던 곳,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되었던 곳으로서 모든 시작의
   중심이 되었고, 마드리드의 모든 길은 이곳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또 이곳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연말에는 모든 시민들의 함성과 함께 재야의 종을 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 레티로 공원 (Parque del Retiro)

                              

           

           


   시민의 가장 좋은 휴식공간으로 가족과 연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 곳에서는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펠리페 2세의 작은 저택 자리에 펠리페 4세가 궁전과 정원을 완성했지만 프랑스 독립전쟁시엔 현재
   군사박물관인 건물만 남기고 소실되었다. 우리 나라 여의도 광장 넓이 정도인 120헥타르(ha)의 넓이이며,
   알폰소 2세의 동상과 추락하는 천사상이 있다.


2. 똘레도
 

■ 똘레도 대사원 (Catedral) 

                     

                    
 
 
   13세기 페르난도 3세 시대에 착공하여 15세기에 완성한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지이다.
   중앙 제대(Capilla Mayor) 제단의 중심으로 42개의 소성당이 있다.
   스테인드 글래스는 15-16세기의 것이며, 성물실 (Sacristia)의 대천장은 루까스 죠르다노에 의한 프레스코
   (천장화)이며, 이곳과 다음 방은 화랑으로 되어 있어 그레꼬의 걸작 <성의를 입는. 사람>을 비롯해서 고야,
   반다이크, 루벤스 등의 작품이 있다.

   중앙 제단 뒤에는 트란스파렌테(투명하다는 의미임)라고 부르는 바로크풍의 대리석 조각들이 있으며,
   이곳은 투명조각을 통하여 밖의 빛이 중앙제대까지 들어오게 되어 있다.
   보물실에는 금은의 재보가 진열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높이 3미터 무게 180킬로나 되는 16세기초의 엔리케
   데 아르페의 작품 <성병현치대>는 일년에 한번만 성체제대 밖으로 내어와서 성 행렬에 꽃을 바친다.



■ 엘 그레코의 집(Casa de El Greco) 

                                       

  
   엘 그레코는 크레타 섬 출신이며, 35세쯤 되었을 때 스페인으로 건너와서 똘레도에 살면서 여기에 많은 걸작을
   남겼다. 엘 그레코의 집은 그가 살고 있던 때를 재현시키기 위해서 그 당시의 가구가 그대로 놓여 있다.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 <성베르나르도 데 시에나>, <똘레도 경치>등 엘 그레코의 작품 외에 16-17세기경에
   활약했던 스페인 화가들의 작품 전시도 있다.
■ 알카사르 성 (Alcazar)

                               

            

  
   똘레도시 가장 정상에 위치한 이 성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을 겪은 대표적인 유적중의 하나이다.
   로마제국의 지배, 아랍족의 지배하에서는 역대왕들이 살던 왕궁이었고 1706년 전란에 의해 크게 파괴된
   이후로 재건을 거듭했으나, 다시 거듭된 화재로 인해 그 원래의 모습에는 많은 손상을 가져 왔었다.
   현재의 건물은 1936년도 스페인 내란 때 폭격에 의해 거의 폐허가 되었던 것을 복구해놓은 것으로, 안에는
   도서관과 군부대가 있으며, 부분적으로 군사박물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 일부에는 1936년도 시민 내란때의 폭격현장이 60여년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되어있다.



3. 바르셀로나 

        
         


■ 피카소박물관

   바르셀로나의 중심 고딕지구의 중세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피카소 미술관은
   천재화가 피카소의 어린 시절의 습작에서부터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 미로박물관

   몬쥬익 언덕의 초입에 위치한 미로박물관은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호세 루아스 셀트의 설계로
   1975년에 개관하였다. 미로가 기증한 300여편이 작품들 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들의 실험성이 강한 다양한
   작품들의 감상할 수 있다.


■ 가족 성당 


  1822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것으로 가우디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가우디가 짓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하 납골당의 일부가 완공되었을때 가우디가 건설을 맞게 되어
  1926년 그가 전차에 치여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가우디가
  골격을 완성하였다. 
  그 이후 여러 명의 건축가가 이어서 짓고 있다. 
  성당은 모두 3개의 훼챠다(fachada:정문)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1891년 만든 fachada del Nacimiento만이 가우디가 직접 만든
  것(cell Marina y Cerdenya Fachada)으로 가우디 자신의 생전에
  이 성당이 완공되지 못할 것을 알고 후계자들에게 예로써 이 Fachada를
  건설했던 것 같다. 

  Fachada del Nacimiento에는 가우디의 모든 Fantasia가 묘사되어 있다.
  인간상들과 식물의 테마들 등 모든 상징들로 묘사된 이 Fachada는
  가우디가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을 표현했다. 
  모든 전통적인 성인들의 모습, 예수님, 마리아, 성 요셉, 천사 등이다.
  탑(las Torres)은 이 성당의 상징으로 현재 완공된 부분은 안쪽의
  107미터의 쌍 탑과 양측의 98,4미터 높이의 탑. 170미터의 중앙 탑과
  그 뒤의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140미터의 탑은 건설될 부분이다.

   지하 예배당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가우디의 묘도 이곳에 있다. 가우디는 말년에 이 성당에서 침식을
   하면서 보낼 정도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기울였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건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 구엘 공원 
 
             

             


   바르셀로나 교외의 구릉에 위치. 당초 미래의 이상적인 전원도시로 설계되었지만 건설 도중 자금난으로
   중단되어 원래 60호의 주택을 지으려던 것이 30호밖에 짓지 못했다. 1922년부터 공원으로 바뀌어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 고딕지구 

            
 
  
   바르셀로나 도시가 제일 먼저 형성된 핵심 지구로 구시가 중에서도 성당을 중심으로 한 일대를 고딕 지구라
   부른다. 성당, 시청, 자치 대통령 궁, 왕의 광장 등이 있다.


■ 람블라스

                              

           

  
   까딸루냐 광장에서 콜롬부스 동상이 있는 평화의 광장까지 약 1킬로미터의 거리로서 원래 냇물이 흐르고
   있었던 지역으로, 약 19세기에 거리로 조성되었다. 거리 이름인 람블라(Rambla)는 아랍어로써 Torrente(냇물)
   이란 뜻으로 이 샘물을 마시면 바르셀로나에 매혹되어 그냥 이곳에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란 타아뜨로 델 리세오(Gran Teatro del Liceo)는 1877년 개관한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물로 바르셀로나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이다.


■ 콜럼버스 기념탑

             


   높이 51.3미터의 탑 꼭대기에 높이 7미터의 콜롬부스 상이 세워져 있다.
   왼손에는 아메리카의 토산품인 파이프를 들고 있다. 1886년에 바르셀로나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4. 그라나다 
 
                                      



■ 알함브라 궁전 (AL HAMBRA)

                             

               

              

              
 
   
   회교 예술의 극치를 이룬 아랍양식의 궁전은 크게 3지역으로 나뉘어진다.
   성곽 외벽인 알카사바(AL CAZABA),  궁전, 여름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이다.
   알함브라(AL HAMBRA)는 아랍어로 빨간 성이란 뜻을 가진다.

   성곽 외벽인 알까사바는 그라나다로 이슬람인들이 거점을 옮기기 전부터 있었으나 여러 차례에 거쳐 궁전을
   증,개축하면서 알카사바도 망루를 30개까지 늘렸다. 빨간 성이라는 이름은 이 알까사바의 벽담이 붉은 색을
   띠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건축할 당시 불야성을 이뤘다고 해서도 붙여진 이름이다.
   궁전은 1236년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아랍인들이 새로이 나자리 왕조를 세우면서 건축되었다.
   헤네랄리페는 여름별궁이 있는 곳으로 아랍어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뜻이다.



5. 코르도바


■ 메스키타 성당 (Mezquita)

   785년 압두르만 1세가 건설을 시작하여 987년까지 3번에 걸친 증축을 하여, 25,000명의 신자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하였다.
   신자들은 면죄의 문(Puerta de Perdon)으로 들어가서 오렌지 뜰(Patio de los Naranjos)에 있는 연못에서
   손발을 씻고(현재는 없다), 종려의 문(Puerta de las Palmas, 옛날에는 19개의 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하나밖에 없다)을 지나 사원의 중심인 미라브(Mirab)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남북 180m, 동서 130m의 거대한 규모이며, 페르난도 왕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었고,
   까를로스 5세 때 르네상스양식의 성당을 무리하게 중앙에 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동거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내부는 줄무늬 석영, 백옥,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만들어진 850개에
   이르는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서있어 미궁을 연상케 한다.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틴제국에서 가져온 것이며, 중앙을 차지한 그리스도교 성당은 이 안에서
   독립된 교회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성상(聖像)이나 성구(聖具)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슬람교 사원의 밝은
   분위기와, 성상(聖像)과 성화(聖畵)에 둘러 쌓인 카톨릭 사원의 어둡고 신비한 분위기가 대조된다.
   입구의 면죄의 문에 세워진 전망대에 오르면 꼬르도바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 유대인 거리 (La Juderia)

                            

                            
 
  
   옛날 유대인들이 살았던 메스키타 주변으로, 꼬불꼬불한 길과 하얀 벽들의 집, 창문을 장식한 가지각색의
   화분들이 친근감을 준다. 빠티오엔 그림타일, 분수, 화분에 심은 관엽식물과 꽃들, 철책 등이 아름답다.
   알모도바르 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14세기 무렵에 건조한 유대인 교회가 있고, 그 가까이에 민예품이
   즐비한 엘 소꼬(El zoco)가 있다. 엘 소꼬 뒤쪽엔 유명한 투우사였던 마노레떼의 유품이 진열되어 있는
   시립 투우박물관(Museo Municipal Taurino)이 있으며 꼬르도바 출신의 투우사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 작은 꽃길 (Calleja de las Flores) 

        

  
   메스키타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인 벨라스케스 보스코 거리에 들어서면 작은 꽃길이 펼쳐진다.
   풍경이 아름다워 지붕들 사이로 솟아 있는 이슬람교사원의 탑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면 좋다.


■ 로마교 (Puente Romano)

            

  
   로마시대에 축조된 돌다리로 과딜끼빌 강에 놓여 있다. 길이 223미터로 여러 차례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그때마다 개축되어졌다. 메스키타에서 이 다리를 건너면 라 칼라오라고 하는 탑이 있다.
   이 탑은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던 시대에 요새로 사용하던 탑으로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6. 세비아


■ 세비아 대성당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회교사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지은 것
   (1396년 세비야에 지진으로 당시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세비야의 회교사원을 헐고 성당을 건축)
   으로 폭 116m, 내부 길이 75m의 세계에서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다.
   1402년부터 200년에 걸쳐 건설하였고 고딕양식, 성물실에 예수의 면류관의 조각이 있다.


■ 히랄다 탑

                             

  
    Giralda는 세비야계 아랍인인 헤베르(Gever)라는 건축가가 세운 것으로 세비야의 상징이다.
   모로코의 라바트와 마라케시에도 같은 모양의 탑이 있으나 아름다움은 비교가 안된다.
   사방 약 14m, 높이 97.52m로 12세기 말 이슬람 교도들이 건설, 지금 성당이 있는 자리에 있던 회교사원
   (메스키타)의 부속 탑이었다. 히랄다는 '돈다', '바람개비'라는 의미이다. 계단이 아닌 나선형으로 이어진
   완만한 사면을 통해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탑을 세울 당시 회교사원의 수장이 너무 늙어서 그가 당나귀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나선형 사면으로 지었다고 한다.
   맨 위의 종루는 16세기 지진으로 파괴된 부분에 덧붙인 것으로 꼬르도바의 회교사원 안의 카톨릭 성당이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안의 기독교식 궁전이 아랍식 건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파괴한 것이라면,
   이 히랄다 탑은 아랍식 양식에 기독교식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라는 평을 받는다.
   첨탑의 종은 총 28개로 지금도 울리고 있다. 둥근 지붕이 있었으나, 14세기경 대지진으로 반정도 무너진 곳에
   1568년 에르난 루이스(Hernan Ruiz)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 스페인 광장
 


  세비야에 있는 스페인 광장은 전국에 있는 많은 스페인 광장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중의 하나이다. 
  1929년 중남미를 중심으로 했던 이스파노 아메리카 박람회 때
  본부건물로 건축된 것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이다.

  현재 안달루시아 주의 정부 부서들이 입주해 있다. 화장타일로 장식된
  무데하르 양식으로 스페인 각 지방의 지도와 문장, 그리고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 황금의 탑

            
 

   1220년 이슬람 인들이 건설,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의 일부였다. 과달키빌 강을 통해 세비야로 들어오는
   선박을 검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강 건너편의 8각형의 은색 탑과 쇠줄을 묶어놓고 배를 통제).
   당시에는 탑 위가 황금색의 타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 불린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탑이 파괴되어 헐릴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소생되었고,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공원 

                            
 
  
   시민의 휴식처로 1929년 개최되었던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장이었던 곳이다.
   1893년 남편을 잃은 몸반세 공비가 산 델모 궁전 정원의 반을 세비야 시에 양도한 것이 기원이다.
   플라타너스 나무들로 빽빽한 공원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고, 샛노란 흙은 시내에서는 이곳과 마에스뜨란사
   투우장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마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는 관광 코스가 있다.



7. 세고비아


■ 알카사르 (Alcazar)

   옛날 전략상의 위치 때문에 파수를 보는 요새가 있었던 곳. 에레스마 강(Rio Erasma)과 클라모레스 강
   (Rio Clamores)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이 성은 월트 디즈니의 영화 중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무대로 사용됐던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성 주변을 선회하는 까마귀와 창문으로 내다 보이는 시내의 모습인 <백설공주>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14세기 중엽 처음으로 성이 축성된 뒤 수세기에 걸쳐 왕들에 의해 증축과 개축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16-18세기에는 일부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862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복원했다.
   1940년, 화재 이전의 형태를 찾았다. 스페인 전성기에 즉위한 펠리페 2세가 1570년 11월 14일 이곳에서
   아나 에아스투리아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성 내부의 각방에는 옛 가구와 갑옷, 무기류, 회화, 테피류가
   전시되어 있다. 1474년 이사벨 데 까톨릭카(Isavel de Catolica)가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으로 즉위할 것을
   선언했다.


■ 세고비아 대사원 (Catedral)

                            


   스페인 후기 고딕 건축물로 마요르 광장 앞에 있다. 세련된 모양 때문에 ‘대사원 중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안쪽 길이 105미터, 좌우 폭 50미터, 1525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768년에 완성(243년간)되었다. 
   당초 종루의 높이는 105미터이었으나 낙뢰로 인하여 88미터(1614년 탑에 벼락이 떨어져 4년 후에 수리,
   원래보다 12미터 낮아짐)로 낮아졌다.
   사원의 부속 박물관에는 회화와 보물, 성 기구와 함께 유아의 묘비가 있다.
   이 묘비는 유모의 실수로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엔리케 2세의 아들 묘비이며, 왕자를 실수로 죽게 한 유모도
   즉시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한다.


■ 로마 수도교 (Aueducto Romano)

   시내에서 17킬로미터 떨어진 산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오기 위하여 축조된 이 수도교는 기원 후반 초기
   로마인이 지배하던 시대의 유물로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길이 728미터, 아치 167개(36개는 Toledo의 아랍 왕 알마문에게 파괴, 15세기 첨방형 아치로 정비),
   가장 높은 곳의 높이 28.29미터이다. 과달라마에서 가져온 화강암만을 사용, 시멘트, 칠, 접합제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축조 된 것이 특징이다. 1884년까지 이곳으로 물을 흘려 보내어 물을 공급했고, 1928년부터
   이 수도교에 수관을 설치하여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다.

 

세비아


■ 세비아 대성당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회교사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지은 것
   (1396년 세비야에 지진으로 당시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세비야의 회교사원을 헐고 성당을 건축)
   으로 폭 116m, 내부 길이 75m의 세계에서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다.
   1402년부터 200년에 걸쳐 건설하였고 고딕양식, 성물실에 예수의 면류관의 조각이 있다.


■ 히랄다 탑

                             

  
    Giralda는 세비야계 아랍인인 헤베르(Gever)라는 건축가가 세운 것으로 세비야의 상징이다.
   모로코의 라바트와 마라케시에도 같은 모양의 탑이 있으나 아름다움은 비교가 안된다.
   사방 약 14m, 높이 97.52m로 12세기 말 이슬람 교도들이 건설, 지금 성당이 있는 자리에 있던 회교사원
   (메스키타)의 부속 탑이었다. 히랄다는 '돈다', '바람개비'라는 의미이다. 계단이 아닌 나선형으로 이어진
   완만한 사면을 통해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탑을 세울 당시 회교사원의 수장이 너무 늙어서 그가 당나귀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나선형 사면으로 지었다고 한다.
   맨 위의 종루는 16세기 지진으로 파괴된 부분에 덧붙인 것으로 꼬르도바의 회교사원 안의 카톨릭 성당이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안의 기독교식 궁전이 아랍식 건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파괴한 것이라면,
   이 히랄다 탑은 아랍식 양식에 기독교식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라는 평을 받는다.
   첨탑의 종은 총 28개로 지금도 울리고 있다. 둥근 지붕이 있었으나, 14세기경 대지진으로 반정도 무너진 곳에
   1568년 에르난 루이스(Hernan Ruiz)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 스페인 광장
 


  세비야에 있는 스페인 광장은 전국에 있는 많은 스페인 광장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중의 하나이다. 
  1929년 중남미를 중심으로 했던 이스파노 아메리카 박람회 때
  본부건물로 건축된 것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이다.

  현재 안달루시아 주의 정부 부서들이 입주해 있다. 화장타일로 장식된
  무데하르 양식으로 스페인 각 지방의 지도와 문장, 그리고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 황금의 탑

            
 

   1220년 이슬람 인들이 건설,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의 일부였다. 과달키빌 강을 통해 세비야로 들어오는
   선박을 검문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강 건너편의 8각형의 은색 탑과 쇠줄을 묶어놓고 배를 통제).
   당시에는 탑 위가 황금색의 타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 불린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탑이 파괴되어 헐릴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소생되었고,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공원 

                            
 
  
   시민의 휴식처로 1929년 개최되었던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장이었던 곳이다.
   1893년 남편을 잃은 몸반세 공비가 산 델모 궁전 정원의 반을 세비야 시에 양도한 것이 기원이다.
   플라타너스 나무들로 빽빽한 공원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고, 샛노란 흙은 시내에서는 이곳과 마에스뜨란사
   투우장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마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는 관광 코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