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생의 전환점
20대는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나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굉장히 불투명한 나이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고, 월남전에 참전하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교사로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이 이십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아 길렀던, 너무도 많은 일을 겪은 가장 바쁜 때였습니다. 혼자 살다가 가족을 책임져야 해서 생계의 책임이 무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정을 얻기도 한, 변화가 큰 시기였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여 혼자 나와 살기 시작한 11살 때부터 중, 고, 대학 시절은 불우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혼란과 방황이 많았고 사회적으로 문제아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69년 월남에 참전하던 당시, 장교셨던 아버님께서 마침 환송부대장이셨습니다. 출발 직전 마지막으로 기차를 시찰하실 때, 나를 보고는 그냥 지나가시더니 곧 뒤로 부르셨습니다. 만약 포로로 잡히는 경우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20불짜리 5장을 쥐어주셨습니다. 그 때 눈물을 글썽이시던 아버님의 눈을 보던 순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깨달으며 그 때까지의 모든 방황을 접게 되었습니다.
대개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반항하고 방황하게 마련이지만 부모가 되어보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야구”
모든 운동에 능했던 저는 중2때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야구에 전념하게 됩니다. 이후 야구특기 생으로 대학을 들어갔으나 야구로 인생을 살기는 힘들다고 판단하고는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군대에 간 것도 실은 야구를 그만두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수를 목표로 일본유학을 준비하던 79년 무렵, TBC에서 만든 야구해설자 양성과정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 오기도 생기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그렇게 우연찮게 시작한 야구해설자로 26년을 살아왔습니다.
체육교사는 특별한 사유 없다면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이지만 해설자는 자칫 잘못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직업이니 그 선택이 옳다 아니다 말하기는 아직도 힘듭니다. 또 해설자로서는 혼자만 잘하면 문제없지만, 사무총장은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동원하여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조직이고, 그래서 건강에도 지극히 안 좋은 힘든 자리지만, 또 이런 것이 사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저 하고 싶은 의욕으로 선택한 길이지만, 결국 가장 사랑했던 야구를 위한 행정이자 야구를 위한, 다른 각도에서의 봉사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한 성공
10여 년, 무명으로 출발한 야구선수, 26년간 야구해설자, 지금 KBO의 사무총장까지 야구인으로서 남이 보기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 욕망을 성취했다는 점에서는 스스로도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과 함께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부와 명예, 출세를 위해 고달프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벌고 더 출세하고 싶은 욕망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인지 적성에 맞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하지만, 그 시절은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했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절실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이라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고 또 ‘직장일’이라면 모든 것이 덮어지던 시절을 살다보니, 바캉스 한번 못 가볼 정도로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캉스 갈 여유가 생겼다지만 다 자란 아이들은 휴가를 함께 따라 나서지 않다 보니 아쉽습니다.
사회적 위치가 성공적으로 보이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길과 다르기도 하고, 또는 내 철학과는 다른 지점을 만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후회해 본 적은 없지만, 집사람이 모 방송에서 ‘가족의 입장에서는 생활이 안정된 교사가 더 좋습니다’ 라고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말했을 때는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궁극적으로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가족들은 일만 하는 나와는 행복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경제적인 수입보다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를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요즘 세대의 가치가 더 옳아 보이기도 합니다.
마이너리거의 태세
이십대의 실패는 성공적인 소득
20대는 실패한다고 해도 무한한 기회가 있지만 40대를 넘어가면 실패라는 것에 몸을 사리게 되고,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20대에는 실패에 주저앉지 말고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조그만 성취에 만족을 느끼기보다 끊임없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의 이십대는 모든 대화와 결정을 컴퓨터에 의존합니다. 분명 머리와 가슴이 다른 법이고, 컴퓨터는 그 가슴의 조절기능이 없는데 컴퓨터에만 의존하니 삭막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롯데 박정태 선수의 경우,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타격 폼을 찾아냈는데, 분명 컴퓨터의 이론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결과였을 것입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과정, 최적의 결과를 위해 수 없는 실패를 무릅쓰며 몸으로 부딪는 도전의 과정,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단어입니다. 성공이냐 실패보다 ‘도전’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실패해보면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얻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만 봐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실패한 사람의 실패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딛고 어떻게 성공할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기다리며 실력을 닦아라
마음만으로 덤비다가 좌절하기 쉬운 때가 20대 이기에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이때다’ 싶을 때 올인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시기입니다. 실력 없이 올인 하면 패하기 마련입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실력을 닦으십시오! 이치로 선수는 메이저에 가기 위해 심지어 영어를 잘하는 부인을 얻고 메이저리그 캠프에 주기적으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준비하는 모습의 차이부터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세계는 차이가 있습니다. 승부를 전제로 한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실력과 기량을 닦고, 그 실력과 기량이 바탕이 되어야,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3,40대를 승부의 결과가 중시되는 시기라고 본다면, 20대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고 또 과정의 소중함을 배울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와 타협하는 것이 가장 나쁜 습관
가장 나쁜 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자기와 타협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3000게임 이상의 승부를 보아 온 결과 이기는 팀은 이기는 습관을, 지는 팀은 지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는 것이 습관이 되면 진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좋은 습관을 만들도록 일찍부터 힘써야 합니다.
져주어야 할 때
두산 김경문 감독의 경우, 누가 봐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실력 있는 투수를 실력이 덜한 투수로 교체해서 게임에 진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물었더니, ‘한 게임을 잃게 되더라도 미리 협의한 약속을 지킨다면 선수와 감독간에 믿음이 생겨 결국 더 많은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경우에는 아이들이 스무 살을 넘어가면서 부모가 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대에 요구할 수 없는 고도의 작전이지만, 때로는 ‘어떻게 질 것인가’라는 중요한 순간이 생길 때 서로가 실패하는 방법이 아닌 win-win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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